“매너가 첫째이고, 스코어는 둘째이다” 이것이 골프의 헌법이다 -에이브 미첼-
2004년 4월 12일 늦은 오후 그해 PGA 첫 메이저인 마스터스가 막을 내린 미국 조지아 주의 오거스타내셔날 골프클럽은 어느해 어느 때보다 요란한 함성으로 뒤덮였다.환호의 한가운데 서있는 선수는 필 미켈슨 이었다.
1992년 프로로 데뷔한 이후 만 12년 마흔일곱 번째 메이져 대회 출전끝에 따낸 첫 메이져 우승을 축하하는 갤러리들의 함성은 끝없이 이어졌다. 74세의 ‘살아있는 전설’아널드 파머가 50년간 정든 오거스타 내셔날 골프클럽과 고별하던날, 새로운 골프 거장이 탄생한 데 대한 찬사이기도 했다.
미켈슨은 그때까지 PGA 투어에서 통산 22승을 올리고도 메이저 대회에서만은 1승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만년 2인자로 만든선수는 다름아닌 “골프황제” 타이거우즈 였다. 백인들의 우상이었던 미켈슨에게 타이거 우즈라는 존재는 해가 들지 않는 깊은 그늘과도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메이저대회에만 나서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었었다. 마스터스 우승 전까지 메이저 준우승만 세차례, 그보다 뒤늦은 1996년 프로로 뛰어든 우즈는 이미 8개의 메이저 우승컵을 수집해 놓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미켈슨에게 ‘새가슴’ 이라며 비아냥 대기도 했다.
현지언론들은 그가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국민의 챈피언 탄생이라고 까지 평가했다. 타이거우즈보다 미국인들로부터 대중적 사랑을 받는 골퍼라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팬들에게 최경주가3위를 차지해 더욱 기억에 남는 이 대회를 통해 왼손잡이 미남골퍼라는 평범한 별명으로 불리던 미켈슨은 다시 미국 백인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그가 프로로 데뷔하기전 아마추어 시절의 경력을 보면 타이거우즈 조차 따라올수 없을 만큼 화려했다. 1991년아마추어 자격으로 PGA 투어 노던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미켈슨이후 아마추어 선수가 PGA 투어에서 정상에 오른 적은 없다.
2004년 마스터즈 이후 미켈슨은 강호로서의면모를 되찾고 있는 듯했다. 그 다음해 8월에는 PGA 참피온쉽에서 우승했고, 2006년에는 다시 마스터스를 제패하는등 3년 연속 메이저 왕관을 썼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2펴센트가 부족하다. 여전히 우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1997년 PGA 챔피언쉽부터 2005년 포드챔피언쉽 최종 라운드 때까지 우즈와 다섯차례 챔피언 조에서 맞붙어 단 한 차례도 우승한 적이 없다. 반면 우즈는 2001년 마스터스와 2003년 뷰익인비테이셔널등 미켈슨과의 맞대결에서 3승을 올렸다
미켈슨이 챔피언조에서 우즈를 꺽은건 2007년 9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2회전인 도이치뱅크 챔피언쉽 4라운드 이날 경기에서 미켈슨은 우즈를 2타차로 제치고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미켈슨은 “10년동안 타이거 우즈를 꺽으려고 몸부림쳤다, 정말 기분좋다” 고 숨김없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켈슨이 당시 우즈의 코치였다가 해고당한 ‘부치 하먼’의지도를 받고 있었다는 점.
한편 오른손잡이인 미켈슨은 골프만을 왼손으로 치는데 아버지의 골프 스윙을 바로 앞에서 흉내 내다가 이른바 “거울원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왼손잡이 골퍼가 되었다고 한다.
미켈슨은 또한 스키, 농구, 야구등 갖가지 운동에 만능 스포츠인으로 꼽힌다 2003년에는 미국 프로야구 디트로이트 산하 마이너리그 투수로 나서겠다며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